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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러] 내겐 지나치게 다정한 당신

이 나. 2018. 11. 29. 21:53

내겐 지나치게 다정한 당신

 

메일러

 

* 수위 묘사 주의.

 

 

 

 

 

 

 

 

 

 

그 새끼가 먼저 꼬신 거야. 씨발 먼저 꼬셨다고. 난 가만히, 있었다니까! 그 새끼한테 가서 물어봐! 말이 참 많기도 하지. 언제나 이런 녀석들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생이 끝나기 전에는 항상 후회가 남을 테니까. 목 부근을 자근자근 밟자 녀석은 캑캑대는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녀석의 얼굴은 시뻘개졌고 팔을 연거푸 휘저었다. 브라이언은 무덤덤한 낯빛으로 녀석을 내려다보았고, 자신의 뒷주머니에서 예리한 나이프를 하나 꺼냈고,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녀석의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제 구두 발 밑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깨달은 브라이언은 이내 자세를 곧추세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골목 어귀에서 느릿느릿 흘러나온 피가 보도블럭을 적시다가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브라이언은 이러한 종류의 일이 참 익숙하다 느꼈다. 이번이 네 번째던가. 아니, 다섯 번째, 그러니까 로저는 만나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

 

 

모두가 너를 사랑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항상,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었다.

 

 

한참 골목을 돌아가던 브라이언은 버려진 창고의 문을 열었다. 조명은 희미하게 깜박였고 쓰레기를 태운 불쾌한 연기가 시야를 방해했다. 깨진 술병과 벗어 놓은 옷가지와 썩어가는 음식물들 같은 것이 바닥에 즐비했다. 한편으로는 낡아빠진 악기들이 쓰러져 있었다. (너는 종종 존나 간지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너는 존재 자체가 예술이 아니던가? 브라이언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브라이언은 제가 찾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로저는, 고장난 흔들의자 위에 누워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듣자 로저는 반쯤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그가 숱 많은 속눈썹이 들여 올리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예뻐 죽을 지경이었다. 다가오는 브라이언의 형체를 발견하자마자 로저가 씩 웃었다으응, 브리.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지? 딴 새끼라도 만나고 왔어? 그의 입에서 늘어지는 제 이름이 참 좋기도 했다. 브라이언은 곧장 로저의 뒷머리채를 붙들고 입을 맞췄다. 흔들의자 탓에 로저의 몸이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허공에서 입술과 혀과 엉켰다가 떨어졌다. 타액이 끈끈하게 입가에 엉켰다. 견디다 못한 브라이언은 로저의 위에 올라탔다. 로저가 눈꼬리를 휘어내며 웃었다. 너는 항상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지,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로저에 관한 일이라면 브라이언은 도저히 인내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예쁜 탓이었다.

 

 

인적이 끊긴 창고 안에서의 얄팍한 움직임과 조악한 신음 같은 것들. 로저는 찔러낼 때마다 목을 젖히며 떨었고 브라이언은 그 목에 키스했다. 로저의 몸에 남은 키스 자국들, 헌데 제가 남기지 않은 것들에 대해, 브라이언은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네  살결을 더 굵은 힘으로 물었다. 로저는 허리를 튕기며 낮게 신음했다. 그리고 말했다.

 

 

으응, 너한테, 아윽, 피냄새, . , 누구, 흐읏! 패고 왔어. 나쁜 새끼.

팬 거 아닌데?

죽였어?

죽였지.

누군데, , 조금만 천천히!

 

 

갑자기 로저가 몸부림치며 브라이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다리가 부러진 흔들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브라이언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뻔히 내 눈 앞에서 너랑 자고 다니는데, 내가 가만 두는 것도 이상하잖아.

질투하는 줄은, 몰랐, 는데. 흐으.

질투 아냐, 맘대로 자고 다니던가.

, 그럴 거야. 근데, 으응, 니가 제일 좋, .

알아.

 

 

너의 마지막 말에 브라이언의 몸짓은 격해졌다. 이내 파정이었고 브라이언은 제 몸을 털고 일어섰다. 로저의 몸이 지나치게 늘어져 있어 흔들의자가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로저는 얇고 높은 숨을 뱉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고서 속삭였다. 벌써 갈 거야? 브라이언이 대꾸했다. 내가 지금 가면 넌 또 다른 자식들 부르겠지. 로저는 대답했다. , 아마. 브라이언은 금이 가고 먼지가 얹은 거울을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럼 지금 안 가. 브라이언의 대답에 로저는 비웃듯이 웃음을 흘렸다.

 

 

섹스 후의 나른한 공기. 로저는 이 느낌을 참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자꾸자꾸 맛보고 싶었는데, 문제는 그런 공기가 약으로는 만들 수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로저는 사람들은 만났다. 만나고 또 만났다. 만남은 짧았고 금방 헤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만나긴 만난 거였다. 브라이언과 연애(이것을 연애라 부를 수 있던가? 로저는 연애라고 생각했다.)를 시작한 이후부터도 그랬다. 브라이언은 갱단 멤버였고 그래서 바빴기 때문에 로저 곁에 항상 있을 수 없었다. 로저 역시 그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가끔 그 알사탕 같은 달큰한 공기가 그리워질 때면, 로저는 제 창고에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들과 한바탕 뒹굴고 난 꼴을 브라이언이 발견할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결코 성을 내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저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유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로저도 잘 알았다. 대신 자신이 뒹군 사람들에게 브라이언이 어떤 처벌을 내리는지 정도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로저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결코 제게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 끝끝내 해결을 보고야 마는 그가, 로저에게는 좀 귀엽게 느껴졌다. 남들에게는 기이해 보이는 관계겠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브라이언이 터벅터벅 걸어와 흔들의자 근처의 바닥에 앉았다. 로저는 손을 뻗어 브라이언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뭉실하고 부드럽다. 로저는 브라이언의 머리칼을 쓰다듬다말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 섹스, 담배. 그야말로 천국에 가깝다고 로저는 생각했다. 그래서 좀 행복했다. 언젠가 이러한 순간을 음악으로 만들겠다고 로저는 다짐했다.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던 브라이언이 로저의 팔목을 붙들고 입을 열었다.

 

 

너 마지막으로 밥 먹은 게 언제야.

오늘인가? 아니다, 어제 점심.

일어나. 밥 먹으러 가게.

 

 

로저는 한 손으로 대강 바지를 끌어올렸다. 좀 도와주지? 로저의 시선에 브라이언은 로저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채워나갔다. 로저는 자신의 옷을 만지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키스했다. 정리가 끝나자 로저는 천천히 일어났고, 그들은 손을 잡고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나오니 무료한 저녁이었고 다정한 공기가 거리마다 가라앉아 있었다. 하늘 가장자리에서 퍼지는 붉은 빛이 사랑스러웠다. 브라이언은 제가 잡은 로저의 손을 더 힘주어 쥐었다. 터벅터벅 타박타박. 둘은 부지런히 걸었다. 골목을 조금만 돌면 괜찮은 식당이 있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이 정도면. 내일이면 브라이언은 또 너와 잔 녀석을 찾아내 죽일 것이다. 너는 브라이언이 없는 동안 다른 녀석을 창고에 끌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이었다.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아주, 아주 안락한 연애였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