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때문에, 진짜 돌아버리겠어. 로저가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브라이언은 속으로 곱씹어 보았다.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어. 내가 너 때문에 정신 나갈 것 같아. 내가 너 때문에 존나 꼴려. 내가 너 때문에 너무 섹스를 하고 싶어. 내가 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야. 사랑해.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너 때문에, 라고 시작하는 로저의 말은 주로 사랑해, 로 끝났다. 얼핏 보면 입이 험해 보여서 결코 사랑해,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도 자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가 작은 입으로 그렇게 종알거릴 때마다 브라이언은 그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로저는 브라이언이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브라이언을 말리기 바빴다. 걔 존나 양아치래. 그냥 양아치면 다행이게? 존나 걸레여서 안 대준 사람이 없대. 저번에 마이클이 하는 말 못 들었어? 그냥 인생 쓰레기야. 니가 아까워. 브라이언은 그런 말을 새겨들을 정도로 분별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술에 취한 로저에게 고백했다.

 

 

좋아해, 테일러.

왜 안 로저야.

?

왜 로저라고 안 불러줘.

 

 

알코올에 달아오른 그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살짝 꼬인 듯한 혀로 로저는 덧붙여 말했다. 로저라고 해 달라고. 그 말에 브라이언은 멋쩍게 웃다가, 그래, 로저, 하고 대꾸했다. 로저는 브라이언의 이야기를 듣다가 손가락에 아슬하게 들려 있던 담배를 놓쳤고, 그걸 잡으려고 몸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반짝거리는 눈 위에 휘청이며 미끄러졌다. 씨발, 존나 아파!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로저가 원망스럽게 브라이언을 올려다보았다.

 

 

, 잡아줬어야지.

, . 미안.

 

 

브라이언은 무릎 한 쪽을 꿇고 로저의 어깨에 손을 감았다. 그러자 로저도 브라이언의 목덜미에 제 양손을 감아 왔다. 로저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 안 할 거야? 로저의 말에 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는 브라이언의 머리를 끌어당겨 그에게 키스했다. 간밤에 온 눈에 닿은 몸이 찼다. 몸이 차가웠는데도 그렇게 오랫동안 키스했다. 멀리서 네온사인 불빛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가까이 있는 클럽에서 괴상한 음악이 요동쳤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세상은 그대로 멈춘 것 같았고 둘만 남아 있었다. 입술에서 혀로 감겨오는 키스는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이런 것이 행복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로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애가 시작되었다.

 

 

로저는 매일 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꿈결처럼 넘어오는 목소리. 살짝 톤이 높은 목소리가 제 이야기를 종알거리는 것이 브라이언은 몹시도 좋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고, 키스하는 것도 좋았고, 섹스하는 건 물론 좋았다. 로저는 모든 것이 익숙한 듯 하다가 금세 수줍음에 떨곤 했다. 자존심이 센 녀석이라 결코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수줍어하는 듯 했다. 모든 걸 알면서도 모든 걸 모르는 듯한 너가, 브라이언은 못내 사랑스러웠다.

 

 

그들 사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로저의 전 애인을 우연찮게 식당에서 만났을 때부터였나. 음식을 유심히 살피다가 콕 집어 먹던 로저는, 한순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로저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간 브라이언은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이언으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이언의 면전에 대고 무례하게 말했다. 이 새끼 당신 따먹고 도망갈 년인데 왜 만나줘요? 로저는 욕짓거리를 뱉었고 브라이언은 그를 한 대 쳤던 것 같았다. 실은 직원들이 부산스레 달려와서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여튼 간에, 불쾌한 식사 자리였다. 그리고 그러한 비슷한 일이 몇 번이 있었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몹시도 좁은 편이었다. 로저를 모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로저는 그 뒤로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그의 과거가 그를 부지런히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어. 로저가 그 말을 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미치겠어. 너 때문에. 정말. 브라이언 너 때문에. 로저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고 가끔은 약도 하는 듯 했다. 담배나 술은 몰라도 약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로저는 속이 빈 듯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맥락 없는 말이었다.

 

 

브리. 난 너한테서 도망 안 가.

알아. 로저. 안다고.

진짜 안 갈 거니까 나 버리면 안 돼. 그럼 존나 끝까지 쫓아가서 니 다음 연애 다 망쳐놓을 거야.

알았어.

 

 

브라이언은 자세를 굽혀 로저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았다. 로저의 마른 몸이 힘없이 안겨왔다. 불안해. 로저가 그렇게 속삭였다. 너 때문에 불안해 죽을 것 같아. 창밖으로는 비가 몸서리치게도 많이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꽉 닫았는데도 빗소리가 마구 새어들었다. 빗소리 사이로 로저가 다시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 때 미안할 게 뭐가 있냐고 말했어야 했는데. 돌이켜 보며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너는 미안할 게 없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브라이언이 아무리 붙잡아도 로저는 제 세상에 갇혀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퍼뜩 브라이언에게 달려들어 감당할 수 없이 키스를 퍼붓다고, 섹스를 하자고 잔뜩 조르다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저는 그러한 자신을 견뎌낼 수 없었다. 로저는 점차, 망가졌다. 브라이언은 로저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는데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도 로저가 떠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브라이언은 지금, 침대에 쓰러져 있는 로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밑바닥 거리에서 팔리는 독한 약들이 침상에 흩뿌려져 있다. 로저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몹시 말랐다. 그의 팔뚝에는 주삿바늘, 키스마크, 주삿바늘, 그리고 키스마크가 연달아 늘어져 있다. 그날따라 섹스는 몹시도 고단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브라이언은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질문은 그들 사이에 해가 되는 법이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물음 대신에 잠든 로저에게 키스했고, 그의 옆에 누워 꽉 끌어안았다. 계절을 분간할 수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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